낭비가 낭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정말로 낭비가 낭만으로 직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효율이나 필요를 따지지 않는 비효율적 행동이 낭만을 만들어 낸다는 맥락에는 동의합니다.
우리 사회는 점점 효율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무언가를 얻거나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경로, 효율적인 방법만을
단 하나의 정답으로 떠받들고, 다른 선택은 모두 잘못되거나 틀린 것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하지만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 단 하나의 길, 하나의 방법이 아닌
수천, 수만 가지의 다양한 길과 선택들입니다.
월간옥키 쉰일곱 번째 주제는 낙서입니다.
낙서는 정해진 틀도, 규제도 없이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가장 개인적이며 자유로운 표현 수단입니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이나 효율의 잣대를 들이밀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낙서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낭만적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월간옥키에 참여한 작가들의 낙서를 살펴보시는 시간이 낭만을 상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6년 1월
장인주


Bluemoon
- instagram @Bluemoon617135
1 뉴욕 브루클린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문화적 해방구 윌리엄스버그를 찾았다. 그리고 100년 전 파리에서 인정받지 못한 젊은 화가로 비극적 삶을 마감한 모딜리아니를 떠올렸다.
2 시애틀의 오래된 재래시장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의 벽은 온화한 도시의 이미지와 사뭇 달랐다. 일교차가 큰 날씨로 인해 유행했다는 Layered Fashion을 그런지 룩(Grunge Look)으로 변모시킨 1990년대 젊은이들의 반항과 자유분방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하동수
- instagram @dongsoo90ha
내용미
주제는 일찌감치 주어졌고 마침 대학가의 사진학원을 다니는 까닭에 꽤 셔터를 끊고 다녔다. 의도한 사진은 이 사진이 아니고 다른 사진이었지만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며 이야기할 때 이 사진이 내용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김선우
- instagram@ seonu_pic
- lens06@naver.com
담쟁이
인간이 낙서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한다.
도구가 볼펜일 수도, 연필일 수도 있다.
아마도 무의식의 흔적일 것이다.
자연에서도 어떤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면
생각지 못한 여러 자연의 흔적들을 발견할 것이다.
마치 담쟁이넝쿨처럼




허진
- instagram @lumimaster
- lumimaster@gmail.com
[해체: 정보에서 이미지로]
일부러 겹쳐 놓거나 뚫어버려서 읽을 수 없게 된 글자들은 더 이상 문장이 아닌 하나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군산의 녹슨 철제 문장과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에서 만난 도려낸 책장들은 본래의 정보들을 잃어버린 채 시각적 리듬만 남아있다.
한 줄 한 줄 따라가며 읽을 수 없으니, 오히려 여유롭게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정보는 낙서가 되고, 낙서는 다시 예술이 되었다.
[발견: 무의도에서 의미로]
자연은 아무런 목적 없이 세상이라는 캔버스에 흔적을 남기곤 한다.
나는 그 무심한 궤적 속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담아본다.
낙서, 기록, 예술, 그리고 흔적.
그 사이 어디쯤을 걷고 있는 거겠지.

에그그
- instagram@egggartist
- egggartist@gmail.com
마음이 먼저 지나간 자리
아무 계획도 없이 흩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 낙서들은 마음이 걸어간 발자국입니다. 점들은 작게 반짝이는 숨소리 같고, 선들은 그 숨결이 길어져 남긴 흔적 같아요. 겹치고 번지고 다시 흩어지며,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어딘가에서 조용히 기대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잘 그리려는 손’이 아니라 ‘살아 있던 마음’이 남긴 기록입니다. 조금 어지럽고, 조금 서툴고, 그래서 더 진짜인 풍경. 바라보고 있으면, 에그그의 하루가 종이 위에서 아직도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김기봉
- instagram@bongsweetie
- momburims1@naver.com
자연스레 기억이 떠오릅니다. 낙서의 매력인 듯합니다.
기억소환
어깨 너머로 익힌 통기타, 지인 상황을 제 시선으로 담은 낙서들,
첫 자작곡의 가사들, 코드들, 잊힐까 싶어 카세트테이프로 녹음했던 1996년 6월 8일, 기록입니다.


김안예
- instagram@kimanye_agnes
- myshiro84@naver.com
초록 속에 남겨둔 나의 낙서
초록의 싱그러움 속에서 그녀는 창가에 서서 한 사람을 바라본다. 말 대신 미소로 마음을 건네는 순간, 그 시선은 조용히 화면 위에 머문다. 창문은 바깥세상과 그녀를 잇는 경계이자, 동시에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작은 액자이다. 꽃처럼 흩어진 색들은 의도하지 않은 손끝의 흔적이며, 무심코 그려졌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감정의 낙서들이다. 우리는 종종 완성되지 않은 문장처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이 작품은 그런 순간들을 조용히 붙잡아 두고 싶었다. 지우려 하지 않았기에 더 선명해진 기억, 잊히지 않아 더 아름다워진 감정의 결을 담았다. 그녀의 미소는 누군가의 마음에도 작은 낙서 하나를 남긴다. 그것은 위로일 수도, 기다림일 수도,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일 수도 있다. 이 그림이 누군가의 하루 끝에 머무는 초록빛 창문이 되어, 오래도록 마음을 따뜻하게 비추는 풍경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순간이, 각자의 기억 속에 조용히 지워지지 않는 낙서로 남기를 소망한다.
초록 위에 그려진 너의 낙서
창문 너머로 스며든 빛과 색 사이에서, 그의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의 시선은 창밖을 향하지만, 실은 그 너머에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말로 건네지 못한 마음은 초록의 색 위에 자연스럽게 흩어지고, 그 흔적들은 마치 무심코 남긴 낙서처럼 화면 위에 머문다. 초록의 싱그러움은 그날의 공기와 온도를 담아내며, 감정이 지나간 자리를 부드럽게 감싼다. 이 작품은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말없이도 완성되는 하나의 기억을 그리고자 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시선, 닿지 않아도 느껴지는 마음, 그리고 오래 남는 여운. 그의 미소는 사랑일 수도, 그리움일 수도, 혹은 아직 고백 되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다. 이 그림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초록 위에 남은 하나의 낙서처럼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머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미소가, 다시 누군가를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작은 용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은용
- instagram@eysj
- hailtoley@gmail.com
어느 귀인께서 이 연작을 보고 바다의 항문 같다고 했습니다. 뭘 찍었냐고 질문하셔서 달을 찍었다고 답해드렸습니다. 김경주의 어떤 시 같다는 소리도 덧붙여 주셨습니다. 저는 아직 그 시를 안 봐서 어떤 느낌인지 정말 가늠이 가질 않습니다만, 제 작업이 누군가에게 특정한 시를 연상시켰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아무튼 이 연작은 낙서처럼 만들어졌습니다. 렌즈가 달을 향하도록 해서 장노출로 흔들며 찍고 보정했습니다. 어떻게 흔드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른 빛의 궤적이 나왔습니다. 흔들림의 각도와 속도에 따라 달은 매번 제각기 다른 몸짓을 보여주었습니다. 조형적인 의도가 컷마다 약간씩 다르긴 했으나, 구체적인 형태는 무작위로 그려진다는 점이 낙서 같았습니다.
이 낙서 같은 사진이 우선하는 목적은 먼저 저 자신이 느낀 ‘재미’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덧붙여 제가 더 바라는 바는 이러합니다. 달로 그린 이 낙서가 저에게만 재밌는 낙서로 남지 않기를, 이 낙서를 보며 당신이 또 다른 낙서를 꿈꾸고 끄적일 수 있기를.


ifnoif
- instagram@ifnoif
- ifnoif.art@gmail.com
1. 마음속에 어지럽게 엉킨 생각들은 파도처럼 소용돌이쳐요.
때로는 뾰족하고, 때로는 둥글게 떠다니는 이 소란스러운 낙서 같은 생각과 감정들을 억지로 파도에 맡겨 하늘에 보내봅니다.
2. 창밖 구름 사이를 바라보며 휘젓는 서툰 생각들이 하늘 위로 길이 되어 올라갈 때가 있어요. 두서없는 생각의 낙서가 조금씩 정돈되어, 작은 소망의 길을 만들어 봅니다.


김선정
- instagram @dddd20182017
- dkny1215@hanmail.net
1. 우리는 누구나 백지 앞에 서면 무의식적으로 선을 긋는다.
정교한 설계나 계산 없이 손끝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낙서’는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표현 양식이다. 나에게 있어 이번 작업은 정제된 예술의 형식을 잠시 내려놓고, 내면의 역동성을 거칠게 쏟아내는 의식적인 낙서에서 출발했다
자유의 상징이자 폭발하는 에너지 작품의 중심에 자리 잡은 말의 형상은 곧 낙서의 본질과 닮았다. 길들지 않은 야생마의 갈기는 마치 검은 잉크가 캔 버스 위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번져나간 낙서의 흔적처럼 표현하였다.
거친 질감은 정돈된 붓질이 아닌 덧칠하며 얻어지는 낙서 특유의 우연성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2. 타오르는 듯한 붉은 배경(정적)과 휘몰아치는 검은 갈기(동적)의 대비는 내면에서 충돌하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낙서처럼 자유분방하게 뻗은 갈기는 정적인 화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 작품에서 말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낙서’라는 행위가 가진 해방감을 형상화한 매개체다.
“나는 완벽한 그림을 그리기보다, 내 안의 가장 솔직한 낙서를 기록하고 싶었다.”
찰나의 본능적인 움직임을
견고한 재료들을 이용해 낙서의 선으로 표현함으로써,
금방 사라질 것 같은 내면의 뜨거운 에너지를 박제하듯 영원히 기록하고자 하였다.
작품의 은은한 푸른빛은 거친 낙서 속에서도 잃지 않는 이성적인 숨결 혹은 차가운 직관을 나타낸다.
월간옥키 기획전시 No.57 <낙서>
참여작가 : 김기봉, 김선정, 김선우, 김안예, 에그그, 이은용, 하동수, 허진, Bluemoon, ifnoif
기간 : 2026.1.28 (수) ~ 2026.2.13 (토)
작가와의 만남 : 2026.2.7 (토) 오후4시
관람시간 : 월~금 오전11시~오후7시 / 토 오전11시~오후6시
장소 : 갤러리카페 옥키
주소 : 서울시 중구 삼일대로4길 19 2층
문의 : 070-4233-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