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온통 슬픔
나의 것도
의미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고
부정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거리도 온통 슬픔이었고
글과 사진을 도도히 선으로 쌓아 올려
오늘 지금 바로 선을 돌려받는다.
– 2025년 9월 19일 사진집단 선류 하동수

김준규 instagram @lunic_jkk
붉은 빛, 거리
낮은 곳에서 비추는 빛은 공평하지 않다.
밤의 도시의 밝기는 사방에 걸리거나, 우뚝 서 있거나, 혹은 내달리는 무수한 광원들에 의해 정해지고,
그 색깔은 빛줄기를 가로막는 물체들과 시선의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겨울날 눈 녹은 물이 길거리의 쓰레기와 같이 얼어붙은 틈새 주변에는 무심한 발걸음이 드물지 않다.
얼음을 비추는 그림자가 누군가의 발목을 붙잡으려 든다.
무용한 시도이다.
얼룩을 주목하는 이는 드물기 때문이다.

임준철 instagram @ljccap
희망의 형상
깊은 어둠 속에서도 작은 틈새는 끝내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그 틈은 단절 같지만 동시에 이어짐의 약속이기도 하다.
거대한 벽은 슬픔처럼 무겁게 서 있지만,
그 벽 위로 번지는 빛은 여전히 희망의 형상을 닮아 있다.

박민욱 instagram @p.minwook_36
무명용사의 길
조용히 물이 흐르는 소리만이 가득한 이곳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길은
사라진 이름 너머로도 그들의 의지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록 이름 하나 알지 못한 채 떠나갔지만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저 빛나는 황금빛 하늘처럼
밝은 미래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최지민 instagram @hin.photo_landscape
사라진 자들의 자리를 채우는 것은
“마츠도”시와 “카시와”시의 경계선, 그것은 나의 삶과 유사한 면이 있다. 외국인이라는 입장으로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어느샌가 나는 현지인들과 외국인의 뒷담을 하는 입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얼마 전에 “마츠도”시 방면으로 출사를 나갔다. 상대적으로 번화가가 위치한 그곳은, UR이라는 일본의 행정법인이 운영하는 아파트 단지가 존재했다. 낙후된 지역이라는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기에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찌는 듯한 더위에 흥미도 없는 사진을 찍기는 싫었지만, 어찌 되었든 발걸음을 옮겼다. 단지에 도착하자, 10년이 넘게 본 적이 없는 모기가 호시탐탐 나의 피를 노리고 날아왔다.
익숙지 않은 상황에 주위를 둘러보고, 조용히 셔터를 끊는다. 단순히, 낙후된 지역이라 생각했던 그곳은, 생각보다도 생소한 곳이었다. 또한, 이국적인 얼굴을 한 자들이 저마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카메라를 내리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하동수 instagram @dongsoo90ha
묻지 마
인간이라는 존재는 곧 고통과 같고, 거리에 인간이 그득하기에 고통스러운 마음만이 자리한다는 것.
왜 그럴까 하는 질문은 서사를 향해 들어가고,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은 행동을 향해 나아간다.
인간은 제각기 다른 서사가 있는 존재이며 제각기 다른 행동으로써 본인의 존재를 증거한다.
그래, 고통 그것을 직면해야만 하는 현실은 수많은 질답 이후로 그냥, 살아낼 수밖에 없다.
그냥 글을 쓰고 그냥 사진을 찍고 그냥 전시 출판한다.
묻지 마 예술 묻지 마.

나경선 instagram @n__ss033
별을이고
어린 꿈들이 넘쳐 나던 시절
별을이고 하늘을 바라보던 아이들
움트던 날의 기억은 온전한데
다시 되살아나라 되살아나라 불러보아도
오지 않는 아이들
너는 꿈꾸던 시간을 잊었는지
지는 해를 보며 말했지
우리의 꿈을 이루겠다고
여물지 않은 아이들
별을이고 작은 몸으로 끄덕였지만
꿈을 잊은지 오래
소리 없이 울었지
꿈꾸던 날은 어디로 가고
소리 없이 우는 너만 남았는지
기권하는 삶의 익숙해진 너
소리 없이 울지만 우는지를 모르고
가슴만 치네
어린 꿈들이 움트던 시절 너는 어디로 떠났는지
다시 되살아나라 불러도 가슴만 치네

손동훈 instagram @Pic__hand
고요한 슬픔이 머무는
2025년의 첫날, 나는 인천 영종도의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새벽의 어스름과 겨울바람은 아직 잠든 세상을 감싸고 있었고, 수평선 너머의 빛은 사리쉽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예보대로 흐린 하늘 탓에 선명한 일출은 끝내 볼 수 없었지만, 그 대신 고요와 정적이 남았다. 나는 그 순간, 새해의 시작이 꼭 찬란한 빛일 필요는 없음을 느꼈다. 흐림 속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고, 또 살아간다.
이 사진은 보이지 않는 해를 기다리던 나의 시선이자, 부재 속에서 오히려 선명해진 순간의 기록이다.

심규성 instagram @aomatsukeisei
거리는 서로 스며들어
거리는 고요하다. 텅 비고, 낡은 간판들만이 우리를 맞이한다.
어질러져 있고, 관리가 끊긴 듯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거리는 서로 스며들어 하나가 되어 가는 듯하다. 거리는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지만, 그 속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조용히 잊혀져 가는 거리, 그러나 여전히 자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들도 한때는 빛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웃음과 떠들썩함이 가득하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사람의 발길은 끊기고, 웃음 또한 사라졌다.
이제 거리는 고요와 적막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안에는 오직 슬픔만이 머물고 있다.

김동욱 instagram @odoriko_fm
흐름이란 천천히
너울이 꼭 산맥처럼 감당할 수 없이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결국 사라지는 것. 거기에 대단한 의미를 붙일 필요는 없어.
포기하지 않고 오래도록 쌓아 올린다면, 인간과 세상의 흐름이란 천천히 그리고 크게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해야 할 것은 정진 공부 그리고 오래 살아남는 것.
– 사진작가 하동수

김강산 instagram @kangsan.kim.nmd
출근과 퇴근 사이의 색은 회색
희미한 회색, 울음이 터지도록 출근을 반복하는 사람의 색.
그을린 회색, 퇴근이 탈출구가 될 수 없음을 알아버린 체념의 색.
회색적 사람은 이미 무한의 연속성을 이해했다.

문성원 instagram @swenmun
다른 기하학 내의 같은 공
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하지만,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스쳐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엑스트라일 뿐입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익명의 누군가를 프레임에 넣어 기호화하는 것은, 연기나 연출의 영역이 아니라 순수한 관찰의 영역입니다.
스쳐 지나갈 뿐인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 그리고 그것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믿음이 합쳐지고, 결국 남는 것은 공허한 실루엣들뿐입니다.
이 사진들은 그런 제 관심사의 발현입니다.

오야마 토마 instagram @toma__oyama
달빛을 머금은 나이테 같아질 때
그는 물을 가득 담고 사람 하나를 툭 놓아 무언가 낚으라고 채근했다.
해가 지고 윤슬이 연어 비늘에서 달빛을 머금은 나이테 같아질 때
푸른 저쪽 산과 구름으로 시선을 머물게 했다.
나누어진 프레임 둘은 다리로 이어진다.
마치 우리의 계절과 하루 밤낮이 공전과 자전으로 윤회하는 것처럼.
– 사진작가 하동수
사진집단 <선류> 단체전
– 거리는 온통 슬픔
기간
2025년 10월 13일 ~ 18일
장소
갤러리옥키
서울 중구 삼일대로4길 19, 2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