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달 개인전 _ 화투

작성일 2016-05-29댓글 없음

패턴pattern은 반복과 변주이다. 나의 삶은, 우리의 삶은, 우리의 세계는 언젠가 있었던 ‘과거의 우물’(토마스 만)에서 다시 퍼 올린 것이다. 이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타자(과거)가 따로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연도 패턴이다.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꽃과 나무, 구름과 비는 수십만 년 전의 꽃과 나무, 구름과 비이다. 세계와 역사, 자연은 복잡하고 광활하나, 단순하고 간결한 패턴(원리, 진리)을 품고 있다. ‘프랙탈fractal’ 구조’처럼, 부분의 구조는 전체를 닮았으며, 그 부분의 부분은 그 부분과 동일한 구조를 반복한다. 패턴은 자기 유사적 반복의 기하학적 구조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파운데이션foundation》에 등장하는 ‘심리 역사학’처럼, 인간사의 반복과 변주를 패턴화한 어떤 법칙이 있어서, 이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는 것이다. 

  ‘화투花鬪 : 꽃들의 전쟁’은 자연계와 인간사가 맞물리며 피워낸 패턴이다. 꽃이 자연계라면, 전쟁은 인간사이다. 1월의 송학松鶴과 2월의 매화, 3월의 벚꽃과 4월의 등나무, 5월의 창포와 6월의 모란, 7월의 홍싸리와 8월의 공산명월空山明月, 9월의 국화와 10월의 단풍, 11월의 오동과 12월의 비이다. 열두 달 각각의 자연 상징은, 열두 달 각각의 세시 풍속이자 정치 문화의 상징이다. 전자가 매달의 축제와 단옷날 및 중앙절과 사슴사냥 등의 풍속이라면, 후자는 11월 오동에 그려진 봉황새처럼 천황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거나 12월의 비 내리는 풍경처럼 일본의 명필가 오노토후小野道風가 그려져 있다. 각각의 달은 각기 네 개의 하위 패턴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리고 12×4=48개 꽃의 패턴이 전쟁을 벌인다. 미인들이 서로 칼을 휘두른다. 아름다운 자연의 이면에 약육강식의 정글이 있듯, 아름다운 꽃들의 전쟁 이면에 인간사의 온갖 더러움과 추함, 돈과 욕망이 넘실댄다. 놀이이면서 도박이고, 문명이면서 야만이다. 즐거울 때도 있고 비참할 때도 있다. 인간의 존엄과 굴욕, 배려와 모멸이 자신감과 열패감 속에 마구 뒤섞여 있다.

  고백건대, 나는 화투를 칠 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화투는 게임 이전에, 기묘한 이미지이다. 일 년 열두 달 화려한 꽃들의 패턴에는, 야릇한 피비린내가 배어 있다. 꽃들의 ‘전쟁’이다. 인생도 그러하다. 상황에 따라 다 다르다. 패턴은 반복이지만 때에 따라 변주된다. 비슷하면서 다 다르다. 언젠가 나도 화투를 배워보려 한다.